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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밀"에서 나타나는 루소의 교육에 관하여 >>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갖게 됨으로써 결정적으로
동물과 구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만이 갖을 수 있는
이성은 대부분의 경우 인간이 성인이 됨으로써 그 성숙한 기능을 보이게 되며, 또한 이러한 이성이
자연적 건전함을 갖춘 성숙한 이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까지, 즉 성인 이전까지의 각별한 교육과
학습을 필요로 하게 된다. 루소에게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자연적 건전함을 우선적 조건으로 하는 성숙한
이성을 갖게 함이 교육의 최종적 목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성인 이 후에 시작되는 많은
학습내용을 스스로 올바르게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함을 의미한다. 루소는 그의 주저 << 에밀 >>에서 이러한 그의 교육관을 보여주고
있다.
1. 교육이론
루소의 교육관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이며 과학적인, 그의 독특한 교육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이 태어나 삶을 살면서 겪게 되는 교육은 원천적으로 자연, 사물, 인간에 의한 3가지의 교육으로 구분된다. 먼저, 자연에 의한 교육은 교육 대상자인 인간의 신체기관의
발달과 능력을 담당하는 교육으로써 감각기관과 두뇌 기능을 포함하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발달, 즉
인간의 총체적 생물적 능력의 발달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에 의한 교육은 교육에 의한 변화가 거의 불가능한(오늘날은 과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할 수 있음) 교육으로써 인간 개체의 선천적 조건과 후천적으로 겪게 되는 자연조건과
환경에 의하여 결정되는 교육이라 하겠다. 그리고, 사물에
의한 교육은 교육 대상인 인간 개체가 겪게 되는 갖가지 사물의 영향을 인간 개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습되는 교육을 지칭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의한 교육은 교사에 의한
교육으로써, 보통 일반적 의미의 교육이라 하겠다.
한편, 이러한 3가지 구분의 교육은
교육 대상자인 학생의 성장, 발전을 위해서는 그 교육내용의 일치가 요구된다. 그렇지 않고, 3가지 교육이 불 일치되어 한 방향으로 귀착되지
않고, 어긋나는 부조화의 교육이 될 때, 학생인 인간
개체의 삶은 혼돈 속에 빠지며, 또한 인위적인 가상의 인생을 살게 되며, 나아가 이러한 혼돈과 가상의 삶의 결과로써 학생 당사자의 육체적,
정신적 올바른 성장, 발전은 저해 받게 되어,
마침내 학생의 육체와 정신은 손상을 입게 된다. 결국,
이러한 학생의 육체와 정신의 손상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자연에 의한 교육에 의하여 불변의 자연성을 갖는 존재인데 반하여, 사물에 의한, 그리고 인간에 의한 교육이 이러한 인간의 자연성과
차이를 보이면서 발생되는 불가피한 결과라 하겠다. 즉,
자연성과 상반되는 사물, 인간의 교육은 인간의 자연성의 기능을 저해, 침해하게 됨으로써 자연성을 요구하는 자연의 이 세계에서 학생인 인간 개체는 더 이상 삶을 영위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기한 3가지 교육 중 자연에 의한 교육은 사물과 인간에 의한 교육에 비하여 교육목적,
내용, 방법에 있어 그 절대적 우위를 갖게 되며,
또한 3가지 교육의 일치를 위해서는 가변성의 사물과 인간에 의한 교육을 불변성의 자연에
의한 교육에 유도, 일치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태어나서 겪게 되는 모든 교육과 학습을 자연에 의한 교육에
유도, 일치함은 그 절대적 당연성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자연에 의한 교육이 담당하는 인간의 신체기관의 발달과 능력의
교육은, 좀 더 구체적인 교육적 측면에서
<<자연성>>의 교육으로 부연 해석될 수 있는데 이러한 자연성의
의미는 대 자연의 속성이라 할 수 있으며, 자연에 의한
교육은 결국 이러한 대 자연에 일치되는 습관을 교육함을 의미한다 하겠다. 이렇게, 대 자연에 일치되는 습관의 교육을 받음으로써 교육 대상자인 인간
개체는 우선적으로 자연성을 그 필요조건으로 하는 육체적 성장, 발달을 보이게 되며, 그리고 이러한 육체적 성장, 발달과 함께 자연적 건전한 이성을
향한 정신적 성장, 발달 역시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성을 루소의 교육목적, 방법,
내용에서 다음과 같이 살펴 볼 수 있다.
2. 교육목적, 방법, 내용
인간의 삶은 자연
속의 삶이다. 자연을 벗어나는 인간의 삶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위적인 오류의 삶으로써, 결국 자연과의 부조화에 의한 문제를 발생케
함으로써 인간 자신에게 고통의 삶을 살게 한다. 따라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의 필요조건이 되는 자연적, 건전한 이성을 위한 교육이 교육의 최종적
목적이며, 이는 성인이 되어 성숙한 이성을 갖기 위한 준비교육으로써 어린이 교육에서 실시되어야 하는
교육이다. 자연을 벗어나는 인간의 삶은 인간의 그릇된 이성의 오류와 남용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이성의 오류와 남용은 이성능력이 없는 감각 능력과, 또는
겨우 적은 관념만을 소유하는 어린이를 성인의 주관적 기준으로 판단, 평가함으로써 성인의 이성능력을
요구하는 교육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그릇된 요구에 의한 어린이 교육은 어린이의 정상적 정신능력의
발전을 방해하게 됨으로써, 결국에는 성인이 되어 갖추어야 할 자연적 건전함을 바탕으로 한 성숙한 이성이 아닌 인위적인 변질된 이성을 어린이에게 강요하게 된다.
이러한 변질된 이성을 갖고 시작되는 성인으로서의 삶은 더 이상 발전의 바람직한 삶이 될 수 없고,
자연과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자연성을 요구하는 이
세계에서 그릇된 이해와 판단으로 인한 오류 속의 파행된 삶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자연적 건전한 이성에 도달하기 위한 어린이에 대한 교육은 철저하게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대상들을 그 수단과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러한 생활과 생존의 필요성을 위한 교육 외의 교육은 전혀 교육효과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린이에게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통용하는 성인의 일반적 관념과 개념(즉 사회적 도덕이나 가치개념 등)을
기준으로 하고, 요구하는 교육은 아직 감각 기능을 주 기능으로 하며 이러한 감각기능인
혼합된 단순 관념만 소유한 어린이에게서는 전혀 기대되는 긍정적 교육효과를 얻어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 감각기능의 발전에 따르는 관념과 개념의 발전,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 소유하여야 하는 자연적 건전한 이성능력의 준비 교육을 망치게 하기 때문이다(어린이는 초기에는 감각 능력만을 가진다. 이 후 계속적인 혹은
동시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감각의 비교와 거기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일종의 혼합감각 또는 복합 감각인 관념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관념들을 바탕으로 하여, 상상과 추리가 가능하게 되어 결국
초기 단계의 이성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어른의 그릇된 기대에 대한 어린이의 그릇된
임기응변적 호응으로 표현되며, 결국 어린이는 교육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아닌 어른의 기대에 대하여
만족을 그 목적으로 하게 되는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답을 하게 됨으로써, 자연과 사물의 내용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아닌, 자연과 사물의
형식과 외형에 대한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결국, 어린이에게 사회의 세속적 습관을 교육의 주 목적으로 배우게 함으로써 더 이상 어린이의 교육은 자신의 심신의
발전을 위한 교육이 아니고, 어른의 기대심리를 만족시키기 위한 교육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의 올바른 교육을 위하여서는 어린이가 갖어야
할 유일한 습관은 필요성에 따라 행동하는 습관이다 (하지만,
어른이 갖어야 할 유일한 습관은 이성, 즉 성숙한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습관이다). 이렇게, 자연과 사물만을 대상으로 하여 생존과 생활의
필요성을 그 유일한 교육목적으로 하는 교육만이 어린이에게 수행되어야 할 교육인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에게는 어린이 자신이 아직 어떤 특정대상에 대한 이해의 능력이
상황에서는 그 특정 대상을 교육하여서는 안 된다. 어린이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대상에 대한 이해능력이
생겼을 때까지 기다렸다 교육함이 그 교육대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린이가 이해능력이 없을 때의 능력한계 외의 교육은 정상적 감각과 관념을 소유한 어린이의 정상적 발전을 그 능력한계 외의 대상에 대한
그릇된 판단으로 저해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어린이에 대한 교육의 목적은 어린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명석한 것을 그의 머리 속에 넣어주는데
있다. 어린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잘못 생각하고 있고,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는 어린이 교육의 큰 문제가 제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린이에게 진리를 교육하는 것은 다만 그가 진리 대신 배우게 될지도 모를 오류에서 그를 지켜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한편, 이러한 어린이의 초기의 감각과 단순
관념들의 이상적 발전을 위해서는 어린이 신체의 건강한 발달이 또한 그 우선적 전제가 된다.
왜냐하면, 어린이의 정신적 발달은 올바른 감각을 그 시작으로 하는데 이는 어린이의
오관의 건강함의 여부에 따라 올바른 감각 능력, 나아가 어린이의 정신 발달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목수가 목수 기술을
습득하려면, 우선 도구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이러한
도구를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또한 이 도구가 튼튼하게 만들어져야 하듯이,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데는 즉 자연적, 건전한 이성, 나아가 성숙한 이성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도구인 우리의 수족과 오관과 육체의 모든 기관이 튼튼하게 단련되고 유지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참된 이성은 육체와는 무관하게 형성되기는커녕
건강한 육체야 말로 정신의 활동을 용이하고 확실하게 하는 장본인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어린이의 건강한 신체의 발달을 위해서는 어린이의 성장환경이 도시보다 시골이 더욱 바람직하다. 시골 어린이는 산과 들을 주위 환경으로 하고 깨끗한 대기와 함께 마음껏 뛰놀고 성장함으로써, 도시 어린이의 닫힌 공간에서 혼탁한 대기속에서의 신체 발달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건강한 체격과 체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좋은 자연환경과
함께하는 시골 어린이의 건강한 신체 발달은 깨끗한 대기와 함께 도시의 여러 인위적 악덕과 폐습으로부터 어린이의 정신발달을 보호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건강한 신체로부터 얻어지는
어린이의 올바른 감각은 시골의 자연적 환경 속에서 어린이의 건전한 정신발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순박한 시골 어린이는 산과 들을 주위환경으로 하여 성장하면서
건강하고, 직관적 감각을 유지발달 시킴으로써 뛰어난 이성을 아닐지라도,
오염되지 않은 순순하고 명확한, 따라서 뛰어난 판단력과 비평력을 소유할 수는 없어도
오류를 범하지 않는 자연적 건전한 이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자연적 건전한 이성은 성인기를
맞어 성숙한 이성으로서의 발달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3. 결론
<<에밀>>에서 나타나는 루소의 교육은 인간 개체가 성인기를 맞기 전까지 어린이 성장과정에서의 교육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루소의 어린이 교육은 결국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자연성에 기초로 하는
교육이론을 바탕으로 한, 그리고 건강한 신체를 그 전제 조건으로 하는 자연적 건전한 이성, 결국 성인기의 성숙한 이성의 준비를 교육목적으로 하게 된다.
따라서, 자연적 건전한 이성 교육의 완성 후,
성숙한 이성의 활용 대상과 목적은 루소 교육의 나머지 후반을 결정하는 중요 교육, 학습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루소는 <<에밀>>에서 자신의 나머지 후반의
교육, 학습내용을 에밀이 여성 배우자를 만나 결혼함으로써,
평범하지만 지극히 자연적 삶을 사는 것으로써 자신의 교육, 자신의 철학을 결론짓고
있다. 한편, 이러한 루소 교육은 결국, 프랑스 계몽기의
그의 계몽주의적 활동에서 보여주듯이 인간과 인간 사회에 중요성을 두는 철학 관점에서의 교육이라 하겠다.
따라서, 루소 교육에서 인간 개체가 성인기에 갖게 되는 성숙한 이성은 그 활동
대상을 인간사회에 돌려 인간사회의 발전, 결국 인류의 행복에 활용됨으로써, 루소 교육 후반의 최종 교육목적은 달성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루소의 교육은 대 자연의 자연성을 그 교육 원천으로 하지만, 결국 << 우주,
자연적 총체적 철학 >>이 아닌 << 비
우주 자연적 부분적 철학 >>인 루소 철학에서 비롯되는 철학적 한계를 갖는 교육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후반의 루소 교육은 그 교육내용에서, 전 우주, 자연의 존재 현상의 한 부분으로서의 미미한 인간 존재의 이해를 위한, 인간 개체의 지적 발달의 교육과 학습은
제외되는 것이다. 결국, 성인기 이전의 교육으로써
완숙한 이성의 준비 교육이라 할 수 있는 루소의 교육은 그 준비 교육 후 성숙한 이성의 활용을 전 우주,
자연의 총체적 이해를 위한 인간 개체의 지적발달이 아닌, 인간과 인간 사회, 즉 인류의 행복에 둠으로써, 그의 남다른 철학적 자질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이지 못한 인위적 철학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주게 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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